Unwind Yoga KLUB
<요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언와인드 요가 클럽 뉴스레터 / vol.9 / SEP.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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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구독자 여러분, 잘 지내고 계셨나요?
두 달의 공백기를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야 다시 글을 씁니다.
이 시간이 무척 그립기도 했고,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은 매우 기쁩니다.
매 달 마감을 해야한다는 약속을 스스로 해놓다보니
가끔은 영감과 통찰이 없는 달에도
억지로 서가를 뒤져서라도 쓰게 되더군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잠시 생각하기위해 멈추었고,
9호부터는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최근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을 읽고,
같이 사는 사람에게 계속 책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 삶의 많은 부분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고,
또 제가 왜 요가를 지속하는 지에 대한 질문이
스스로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위의 제목과 아래의 글들은
7월에 이미 써놓은 글인데
조금 보태고, 조금 이어서 쓰면 될 정도로
풀리지 않았던 하나의 퍼즐을
이 책이 맞추어 준 기분입니다.
다시 글을 쓸 힘을 준 책입니다.
아마도 이 책이 주는 영감과 통찰을
기다리고 있었나봅니다.
역시 글이란 이렇게 조금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고
영감이 도착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손에 마법이 걸린 듯 써내려가야 제 맛입니다.
저는 매 달 마감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기듯
글을 쓰던 직업을 가졌어서 그런지
마감기한을 지키는게 중요했기 때문에
타협하며 완성도는 포기했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더 이상은 그렇게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앞으로는 '월간 요가 클럽' 대신
'언와인드 요가 클럽'이라는 이름의 뉴스레터로
비정기적 발행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짧게 더 자주 쓸 수도 있습니다?)
부디 너른 마음으로 양해부탁드립니다.
고요하게 이 공백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고 나누는 건 저에게 무척이나 큰 기쁨입니다.
글을 쓰면서 삶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통찰하고,
몸 담고 있는 요가를 더 깊게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함께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그러하시길 기대해봅니다.
모쪼록 높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 하루 하루,
내면에 나름의 아름다운 것들이 물들기를 바랍니다.
<언와인드요가클럽 발행인 김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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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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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적인 작가답게 달리기를 참 근사하게도 적어냈습니다. 본업인 소설 쓰는 이야기도 아닌 그저 매일 달리는 일상일 뿐인데도 우리는 그와 함께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달려나가고 싶어집니다.
20대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을 접했다가 달리기에 반해서 그가 듣는 러닝 플레이리스트를 모조리 다운 받아 재생목록을 만들고, 마라톤화를 사고, 동생을 꼬득여 책을 읽게 한 다음 같이 마라톤 연습을 시작했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이던 동생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홀로 달리기를 하며 저 없이 홀로 마라톤 대회를 나가고 있네요.
저는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가 좋아서 마라톤을 시작했고, 지금은 달리기 대신 요가를 매일 하고 있습니다. 그의 태도가 좋았던 것이라 굳이 달리기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삶 안에서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달리기와 요가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저 급하게 깎고 다듬어 겉보기 좋은 모습을 가꾸기 위한 운동이라기 보다는 가볍고 건강한 몸으로 매일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정신적인 희열의 목적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온전히 매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가짐에서 시작하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고 절제를 통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른다는 점에서요.
달리기든 요가든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매일의 삶 안에서 온전해지는 자신을 보는 내적인 만족과 기쁨이 제일 클 것입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 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는 것,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적은 이유를 하나 하나 단련하는 일 뿐이라는 것' 저는 이 문장에 별 표 다섯 개를 치고 싶은데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도파민네이션>에서는 달리는 것을 고통스러운 절제로 본다면, 그만 둘 이유를 쾌락을 위한 장치들로 봅니다. 쾌락을 즐기고 고통은 피하도록 진화된 인간이 어떤 것을 선택하기 쉬운지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쾌락은 발을 들이기도 쉽고 중독도 쉽지만, 달리기는 매일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절제가 필요하고 시작하기도 늘 고통스럽지만, 정신차리고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서는 달리기 위한 이유 하나 하나를 소중히 단련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표현한 것 입니다.
저 또한 스스로 계속 요가해야 하는 이유 하나 하나를 단련해나가기 위해 이 뉴스레터도 지속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매일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그려집니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곧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걸 아는 성숙한 영혼이 이런 날, 저런 날의 감정과 마음들을 모두 이겨내고 이내 문을 열고 나가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와서 털어낸 후,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게 아침의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그를 상상하면 존엄한 인간의 모습에 뭉클해집니다.
가끔 저도 스스로 매트에 서서 한계를 이겨내며 몰입하는 순간에 스스로에 대해 종종 그런 마음이 생겨납니다. 시작은 어렵고, 넘어서기도 어렵지만 하고 나면 그것은 이내 건강한 기쁨을 안겨줍니다. 전에는 몰랐던 기쁨입니다. 늘 현실을 미워하고 도망칠 생각만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피하고, 달콤한 것만 좇던 날들에는 불만족이 더 컸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그때보다 별 일 없이 살지만 기쁨이 더 큰 걸 보니 참 감사한 일상입니다.
그날의 일을 잘 해내고나면 절제한 그만큼의 작은 보상을 줍니다. 하지만 보상이 쾌락 쪽으로 넘치면 또 저울의 균형이 깨져서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즐기는 순간에는 좋다는 착각을 하지만 쾌락은 고통입니다. 다시 절제로 발을 들이려면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보상은 언제나 내가 매일 매트에 설 수 있는만큼만 입니다. 저는 내일 다시 매트에 서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어떠한 경우든 무조건 도망치지 않고 매트에 서고, 쾌락 후의 고통을 확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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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과잉 시대에서의 균형, 스스로의 규칙과 절제가 답이다>
『도파민네이션'dopamine'』의 저자 애나 렘키 박사는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스탠퍼드대학 중독치료 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붓다선원 진경스님의 법문을 듣다보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늘 숨에 마음을 고정하시고 감각기관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적 희열을 느끼세요. 쾌락은 곧 고통입니다."
'쾌락은 곧 고통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 말만 듣고 과연 자신만의 규칙과 절제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좀 더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답이 이 책에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사례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중독성 약물은 물론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지나쳤던 쾌락의 대상들,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물, SNS 등에 중독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볍게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대상들입니다. 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책,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과도 맞닿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이 책도 추천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뇌과학과 신경과학의 측면에서 설명해줍니다. 뇌는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하는데, 실제로 이는 복잡한 메커니즘이지만 저자의 단순한 도식에 따르면 쾌락이 증대한 후 뇌는 평형 상태에 이르기 위해 우울감과 같은 고통을 후차 반응으로 일으킵니다. 더구나 쾌락은 내성이 있어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고, 이는 중독에 빠지게 된다는 원리. 중독은 쾌락 자체를 위해서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이후 신체적이거나 심리적인 고통을 완화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끊임없이 중독에 해당하는 물질이나 행위를 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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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경로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우리의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은 수평 상태를 유지하려하고, 반사작용처럼 되돌리려는 '자기 조정 매커니즘'을 작동시킨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이 반작용으로 수평이 되고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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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희망적인 소식은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충분히 기다리면, 우리의 뇌는 중독 대상이 없는 상황에 다시 적응하고 항상성의 기준치를 정산 수준으로 되돌린다.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 셈이다. 뇌의 저울이 수평을 이루면, 우리는 산책하기, 해돋이 구경하기, 친구들과 식사 즐기기 등 일상의 단순한 보상에서 다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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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와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가짐을 여유 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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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0대 즈음에는 사회적으로 관대하게 용인되었던 술, 과자, 넷플릭스, 관계 만들기 등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퇴근 후 이 정도 즐기는 건 모두에게 그저 기분 전환의 정도로 여겨질 정도로 모두 용인하는 부분이니까요. 은밀하게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회사에서 이런 대화는 아주 흔합니다. '나 어제 누구랑 썸 탔잖아.', '나 어제 밤새 그 드라마 이어보기하느라 몇 시간 못 잤잖아. 너도 봤어?'
하지만 회사에서 이런 대화는 흔치 않습니다. '나 아침에 회사 지하 헬스장에서 5킬로 달리고 왔잖아.', '어제 자기 전에 요가 한 시간했잖아.', '내가 건강하게 요리해서 혼자 저녁 차려먹었잖아.', '이런 책을 읽고 이런 걸 느꼈잖아.'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입니다.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집단의 분위기가 관대하게 용인하는 것들은 쉽고 가볍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저희 잡지사 편집부 대다수가 수치로 보면 쇼핑 중독이었는데 그때는 새로 산 물건을 자랑하느라 바빴고 저도 그 때 가장 많이 쇼핑을 했습니다. 또 첫 잡지사에서는 광고부 부장님 자리에 재떨이가 놓여있을 정도로 담배에 관대한 회사였는데, 옥상에 올라가면 편집부, 광고부 너나 할 것 없이 대대수가 담배를 피우며 업무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담배커뮤니티에는 낄 수 없어 회식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저는 그때 술을 가장 많이 마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담배와 술에 관대한 회사였습니다. 방송국에 다닐 때에는 쇼핑은 훨씬 덜 했지만, 대신 컨텐츠에 중독이 되어있었습니다. 매일 일로 새로운 컨텐츠를 보아야하니 이 정도 보는 게 중독인지도 모르고, 일을 하지 않는 날도 하루 종일 집에서도 모니터를 켜 놓고 무언가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컨텐츠를 소비한 시절입니다. 이런 것들에 한 번 쉽게 발을 들이면 중독에 빠지는 길이 됩니다. 집단과 환경이 나를 그렇게 끌고 갈지라도 한 번 더 점검해보고 절제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피로사회의 환경에서 벗어나니 어떤 유혹과 중독에 빠졌었는지 이제야 보입니다. 저자는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로 피로해진 현대인들은 쾌락을 절제없이 탐닉하고 행복을 초조하게 갈망하는 우리는 강박적으로 현실을 잊게 만드는 도파민 과다복용하면서 버텨내고 있고, 그 중독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회사에서 일 할 때조차 사고 싶은 물건을 틈을 내서 사는 상상, 어젯밤에 보다만 컨텐츠가 있으면 온 종일 그것을 보고싶다는 생각, 약속이 있으면 끝나고 술을 마시러 가는 생각만 했으니까요. 현실에 몰입하지 못하고 쾌락으로 도망 칠 생각만 하는 것도 중독의 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이내 중독이라는 증거는 쾌락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져 이제는 종종 선택해서 즐기는 삶의 기쁨이 아니라 삶에서 자신을 몰아내는 고통으로 변화할 때 정체가 드러납니다. 현실에서 집중력을 잃는 건 기본이고, 지나친 쇼핑으로 카드값에 허덕인다거나, 숙취로 인해 다음 날 업무나 미팅을 망친다거나, 술을 못 마시면 음식을 먹어댄다거나, 그로 인해 자신의 건강을 헤치거나 골치 아픈 부정적인 사건들이 연쇄작용으로 생긴다는 것이죠. 자신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데도 중단할 수 없다면 이미 중독에 빠진 것 입니다. 그때부터는 그것이 주는 즐거움이 예전 같지 않은데도 벗어날 수 없게 되고 더 높은 강도를 원하게 됩니다.
도파민 분비가 되면 우리는 쾌락을 느낍니다. 쾌락을 지속하기 위해서 특정한 행위를 반복하게 되면 그 행위로부터 얻게 되는 쾌락의 기준점은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고 그 전보다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마치 축제가 끝난 뒤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인해 무기력함이 찾아오기 쉬운 것처럼요. 외부 요건에 의존해서 쾌락을 지속하는 것은 일시적이며 후에는 고통을 불러옵니다. 중독성이 있는 대상과 행동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이 되지만 길게 보면 우리의 문제를 키웁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 피로사회와 끝없는 유혹 속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기분 좋은 도피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쾌락을 행복인 양 조급하게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조금 단순해보이고 냉철하지만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약한 고통으로 강한 고통을 막는 법, 즉 고통을 마주하는 연습을 통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다시 수평으로 맞추는 것 입니다. 둘째는 솔직함으로 뇌를 개선하는 방법, 셋째가 '집단선club goods'인데 다소 과해보일 수 있는 규율을 갖춘 조직 활동을 통해 선한 행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는 보상을 집단선이라고 언급했다. 집단선이 탄탄할수록 그 집단이 현재의 구성원들을 유지하고 새 구성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내가 ㅇㅇ에서 얻는 즐거움은 내가 투입한 에너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그들이 나를 얼마나 따뜻하게 맞이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ㅇㅇ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로런스 야너코니
'집단선은 집단 활동과 모임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집단 규칙 및 규범의 준수를 통해 강화된다.' -도파민네이션 p.262
가족집단에서의 행복추구를 위해 집단의 규약 혹은 규칙을 엄격하게 지켜나간다면 이 가운데 서로의 신뢰가 싹트고 가족 개개인의 의무와 권리애 대한 스스로의 자발적 준수를 통해 가족구성원으로써의 소속감을 느끼고 이는 도파민 생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처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속감이 생기고 그 조직의 목적에 맞는 행동을 스스로 하게 된다는 것이죠. 가족 안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저자 스스로도 희생과 낙인을 무릅쓰며 '집단선'을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에게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휴대폰을 사주지 않아 괴짜 취급을 받게 하지만, 아이들은 얼마 후 이러한 차이를 자기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희 부모님의 경우도 스스로 희생과 낙인을 무릅쓰며 우리 가족의 '집단선'을 강화해왔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엄격한 규칙과 성실성의 강조, 스스로 고집스럽게 본보기가 되어 지금까지도 저희 가족의 집단선은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본인 스스로도 매일 성실하게 규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초등학생에게 6년 내내 개근을 강요한다거나, 티비를 보는데 늘 앉아야 하는 적정 거리가 있었으며, 방학에는 짜 주신 생활 계획표대로 일상을 보내고, 하루 세 번 밥 먹고 3분 안에 가족이 다 함께 양치질을 하는 것, 주말에는 할머니댁 가기 등, 다수는 과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규칙까지 인내하며 함께 지켜냈습니다. 이런 것들이 참여를 강화하고 무임승차를 줄이며, 집단선을 늘리는 효용 극대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가능한 지점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물론 보상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댁에 가면 무조건 파파이스 외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도 그러한 엄격함을 불평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끼리 누리는 작은 쾌락이라곤 가끔 치킨을 시켜먹는 것, 시장에서 회를 사다 먹는 것 정도여서 이 집은 절제와 검소, 규칙만 가득하다고 불평하면서 가족끼리 해외 여행도 한 번 누리지 못했다고 비교하고 툴툴댔지만, 유적지나 산을 공부하셔서 할머니댁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국내 여행을 데리고 다니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가족과 커다란 지도를 보면서 길을 함께 찾고 국도를 타고 여행 다니던 기억이 가끔 그립습니다. 그렇게 함께 나눈 시간이 많아서인지 사이가 좋습니다. 다 지나고 나니 지금은 그런 부모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듭니다.
비록 이런 조직 안에 있지 못했다해도 자신의 힘으로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모든 걸 꾸리고 원치 않는다면 바꿀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예를 들면, 대부분의 요가원에는 적당한 규칙이 있습니다.
저희 요가원의 경우, 수련 시간 5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수련을 준비할 것, 다소 엄격한 수련, 시작 후에 휴대폰은 무음, 차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묵언의 공간이며 차담 시간에 나누는 대화 또한 건강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다수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결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함께 수련하는 도반들은 그 결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대다수가 '건강과 선, 절제'등을 목적으로 수련하기 때문에 솔직함을 나누며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이러한 따뜻한 감정이 친밀감을 만듭니다. 함께 건강한 쪽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힘과 의지 또한 생겨납니다. 또한 안내자나 수련자 모두 휴대폰을 진동이나 소리로 해놓거나, 문을 세게 닫거나, 지각을 한다거나 하면 스스로 적절한 수치심을 느끼고 개선하게 되는 환경입니다. 그런 친사회적 수치심은 자기애의 거친 면을 부드럽게 만들고, 우리를 지탱하는 사회적 연결망에 더 가까워지도록 하며, 우리의 중독 경향을 억제함으로써 긍정적이고 건강한 효과를 낳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결국 중독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건강한 가정, 건강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집단선'의 힘을 빌려 삶의 울타리와 환경을 건강하고 탄탄하게 잘 만들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쾌락으로 도망치고 피하고 싶게 만드는 현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삶에서 기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해 보고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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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봤을 때 중독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 강박적으로 소비, 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p27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약물 중독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있지 않다. 현대인은 사소한 불편조차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 현재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저 놀기 위해 계속 애쓰고 있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서로를 즐긴다. 그들은 생각을 주고받지 않는 대신 이미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 대신 멋진 외모, 유명인, 광고를 논한다. -p.56~57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 끔찍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p.58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p.62
중독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쾌락의 대상을 탐닉해도 전혀 흥분을 맛보지 못한다. 오히려 비참한 기분에 빠진다. 이 때 나타나는 보편적인 증상으로는 불안감, 과민 반응, 불면증, 불쾌감 등이 있다. -p.76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우리는 순간적이고 영원한 기억을 뇌리에 새기기 때문에 쾌락과 고통의 교훈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그러한 기억이 해마에 남아서 평생 가는 것이다. -p.87
계통발생적으로 쾌락과 고통을 처리하는 가장 오래된 신경 장치는 진화 과정을 걸치면서 대체로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결핌의 세계에 완전히 맞춰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쾌락이 없으면 먹거나, 마시거나, 번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이 없으면 상처나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끊없이 갈등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은 궁극적인 추구자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세상의 시험에 너무나 잘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풍족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 풍요로운 세상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 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p.87~88
신경과학자 새뮤얼 매클루어와 그의 동료들은 즉시 보상과 지연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관여하는지를 연구했다. 관찰 결과, 참가자들이 즉시 보상을 선택했을 때는 뇌에서 감정 처리와 보상 처리를 하는 부위가 활성화되었고, 보상을 미뤗을 때는 계획과 추상적 사고와 관련된 뇌 부위인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 -p.131
그는 자신의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전혀 부자연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강박적 과용의 늪에서 벗어나 기쁨, 호기심과 함께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자연스럽게 다시 소통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존엄성을 느꼈다. 제이곱에게는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곧 자유로워지는 길이었다. -p.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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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플레이북>_서로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며 회복되는 지점.
양극성 장애라는 뇌질환을 가진 남자와 성적 통제력을 잃은 여자가 등장합니다. 둘은 서로를 통해 차차 현실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생긴 정신 질환과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
<어나더라운드>_삶의 무료함이 유혹과 쾌락을 거쳐 중독으로 이어지는 과정.
겉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4명의 중년 교사들이 무료함에서 혹은 다양한 현실의 고민들로부터 벗어나기위해 다함께 위험한 알콜 게임을 즐기게 되고 중독의 늪으로 빠지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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