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wind Yoga KLUB
<What you think you become, 바른 견해의 힘>
언와인드 요가 클럽 뉴스레터 / vol.12 / APR.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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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발수레를 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발수레를 미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부분이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아잔 브람( Ajahn Brahm) -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인간관계를 파괴하려 들고, 화내고, 질투하고, 미움의 감정을 가지게 하며, 자신이 쌓아올린 아름다운 집을 부숴 버리는 코끼리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길잡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로 유명한 호주 스님 아잔 브람은 마음이 가진 특성과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하기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 저서에서 마음을 술 취한 코끼리로 비유한 것도 그 예입니다.
아잔 브람 스님이 출가하기 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만난 노벨상을 수상한 저명한 학자들 조차도, 그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학문을 통해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지내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태국으로 떠났습니다. 23세에 승려가 되었으며, 당시 태국에서 존경받던 스님 아잔 차의 제자가 되어 9년간 수행했습니다. 이 후 호주로 건너가 절을 세우고, 호주에서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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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요가 클럽 뉴스레터 12호의 시작을 아잔 브람의 책 속 한 구절로 시작한 이유는 그가 젊은 승려로 아잔 차 스님의 사원에 머물 때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사흘 동안 열심히 흙 무더기를 옮기는 공사를 할 때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바쁘단 핑계로, 또 쓸 주제가 없다는 이유로 뉴스레터를 쓰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저에게 도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큰스님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했으나 이전의 장소로 다시 옮겨야 되는 상황이 오자 영어로 투덜대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 태국의 한 스님이 위의 문장을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외발수레를 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외발수레를 미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부분이다.'
그 이후 아잔 브람 스님은 사십 년 간 그는 그 말을 잊지 않고 생활에 적용해오고 있다고합니다. 예를 들어, 그저 누워있기만 하면 죽음이 일어나듯이, 죽는 것은 쉽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렵고 힘든 부분이며, 법문을 하는 것은 쉽고, 어떤 주제로 법문을 할 지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요.
시작하면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게 적용해보니 번뜩,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뉴스레터를 쓰려고 고민하는 것은 어렵고, 막상 쓰기 시작하면 어렵지 않게 술술 풀렸다는 사실을요. 막상 쓰기 시작하면 두 세시간이면 쓰는 뉴스레터를 어떻게 쓸 지 생각만 두 세달씩 했다는 것을요. 수업을 어떻게 할 지 생각하는 것은 어렵고, 수업을 하는 것은 막상 쉽다는 것을요.
그저 행동하고, 경험하고, 부족하면 공부하면서, 그 경험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그만큼의 가치가 없고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살면서 계속 경험했지만 여전히 생각의 노예로 사는 이유는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바른 견해를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은 지혜와 깨달음을 통해 바른 견해를 확립했더라도 오래 의식에 박혀있는 고질적인 습관이 우리를 붙잡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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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은 이렇게 견해를 바르게 잡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뉴스레터를 쓰는 실천을 했다고 해도 수행이 깊은 아잔 브람 스님처럼 인식까지 바로 잡아서 생각하는 습관을 없애고 완전히 자연스럽게 걱정 없이, 생각 없이 쓰는 습관으로 가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각자의 정도와 종류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질적인 감각적 욕망과 그로 인해 중독된 어리석은 습관이 있을 것 입니다.
내가 만약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내 삶에 도움이 돼. 행복이야.'라고 오랫동안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 이것은 사실 괴로움이고, 내 삶의 흐름에 저항을 만들어내고 있었구나.'라는 견해의 전환이 일어난다고 해도, 인식이 바뀌어 자연스러운 삶의 습관으로 적용되기까지는 오래 걸립니다.
약간만 정신을 바로 잡고 있지 않아도 다시 전으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또 다시 걱정과 생각으로 자신을 가두고 실천하지 않는 핑계를 만드는 것이죠.
그것은 왜 그럴까요?
바로 이런 매커니즘 때문입니다.
왜곡된 견해는 바른 견해로 바뀌었지만, '이것이 더 행복하고 편안하고 안전하다.'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의식에 행복이라고 여기는 감각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견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것은 행복이야.'라고 그릇된 인식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반복해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행복인게 확실해.'라고 내 안에서 오래 정착된 인식은 의식에서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새겨진 세월만큼 벗겨내는 작업도 그만큼 오래 걸립니다.
그래도 견해를 바르게 세웠다면 그릇된 인식은 조금씩 바로 잡히기 시작합니다. 습관적으로 그릇된 인식으로 돌아가더라도 계속 반복해서 돌아오고 새기는 습관을 반복하다보면 어리석은 습관과 인식의 빈도수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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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 입니다.
삶에 대한 견해가 바뀐 뒤, 인식이 천천히 바뀌어가는 과정은 이러합니다.
'육체와 마음을 가지고 사는 한, 이 괴로움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어. 이 한계를 넘어 평안함을 얻고 싶어. 한 때는 뭔가를 성취하고 즐기고 기쁨을 느껴도, 또 어떤 때는 혐오하는 일이 일어나서 슬픔을 느끼고 불행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인해 고통을 느껴. 성취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이루고 살았는데, 여전히 혐오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갈망, 갈애 때문에 불행해. 뭔가 잘못되어 있어. 그것들은 행복과 아무 관련이 없었어. 이 매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부하고 직접 극복해보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감각을 느끼고, 마음을 잘 다스려서 평온을 얻고 싶어.'
처음 제가 요가와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 안에서 이런 바른 견해의 변화가 일어났고, 더 이상 지금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견해는 의심 없이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견해가 바르게 바뀐 뒤에 과연 제가 바로 인식이 바로잡히고 매일 앉아서 요가와 명상을 해서 평온을 얻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파드마아사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수행에 대한 의심과 통제되지 않는 육체에 대한 성냄이 일어나 십 분도 앉아있지 못했습니다. 매트 위에서의 요가 수련은 세속에서의 사회 활동처럼 감각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만과 욕심으로 흘러가기 일쑤였습니다.
바르게 수련과 수행을 해야 평온을 얻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에 행복을 느끼던 것들에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인식의 습관으로 반복하고 있는 그릇된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면서 반복해 온 왜곡된 견해로 인해 만든 인식은 바른 견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습관적으로 전의 패턴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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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을 외면하고, 술 마시고, 데이트하고, 야식을 먹고, 늦잠을 자고, 성공해야 하고, 컨텐츠를 소비하고, 수다 떨고, 여행다니고, 쇼핑하는 것이 잘 관찰하면서 바른 견해 안에서 보면 예전만큼 행복하지도 않고 괴로움이라고 인식되는 빈도수가 많아지는데도 우리는 왜 아직 완전히 끊어내지 못할까요?
우리는 자라는 동안 이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오랫동안 주입 받고 살아왔습니다.
저도 알면서 반복하는 습관이 아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면서도 씁쓸하고 하고 나서도 씁쓸함을 알아차리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제 안에서는 두 사람이 말하죠.
'그래, 이젠 알면서 왜 자꾸 행복이라고 착각하면서 반복해. 하고 나면 좋지도 않으면서.'
'싫어, 그래도 이 행복은 아직 포기 못해.' 라고 대화를 나눕니다. 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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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견해가 새겨지면 그렇게 힘이 강한 것 입니다. 전에 새겨진 왜곡된 견해로 인해 지금 자신이 실망스러운 습관을 반복하더라도 계속 가십시오. 그저 반복했던 시간만큼 바로 잡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뿐 입니다.
위와 같이 제 마음 속에서 반조를 통해 바른 견해가 시작된 지점부터 지금까지 14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제가 살아온 세월은 28년 입니다. 인식과 습관이 변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각자 모두 계산해보십시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바꾸기가 어려워집니다.
마음 속에 바른 견해가 싹트기 시작했다면, 이제 왜곡된 견해를 버리고 삶을 바꾸고 싶다면 포기하지 말고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저는 실수를 반복할 지라도 정신을 차리고 바른 견해를 포기하지 말아야지 매번 다짐했습니다.
'니가 무슨 요가를 해?, 니 주제에 무슨 요가를 안내해, 내 주제에 무슨 입바른 소리를 해.', 주변에서 아무리 외쳐도, 또 자신의 마음 속에서 외쳐도 결코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릇된 견해로 살아온 세월이 28년이니 14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실수해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은 괴로움임을 알면서도 가끔 예전 습관을 반복해도, 마음이 꽤나 너그럽고 편안해집니다.
요가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느슨하게, 또 팽팽하게 노력한 14년의 시간만큼 분명히 인식은 나아지고 있습니다. 십 년이 지나면 확실히 보입니다. 여러분도 조급해하지 마시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시고, 그렇게 계산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완벽해지려고 하면 생각과 걱정때문에 옴짝 달싹 못하고 시작조차 할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 뉴스레터를 완벽하게 쓰려고, 혹은 완벽하게 요가하려고 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입니다.
그저 저는 이런 삶을 살고 싶고, 이 좋은 것을 모두에게 나누고 싶은 것을 부족하더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했을 뿐 입니다. 누군가는 부족하다고 욕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스스로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괜찮습니다.
확신이 있는 바른 견해 안에서 가고 싶은 길 위에 있다면 그런 것들은 괴로움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것이 이 삶과 우리가 원하는 비젼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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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세상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가끔 실망스럽더라도 맞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십시오. 있는 그대로를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평온함에 이르를 때까지요.
수련을 지속하고 나누는 것은 우리를 계속 가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망상이고, 완벽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요즘 지도자 과정으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질문을 듣다 보면 불안함이라는 것은 세상이 만든 완벽함이라는 왜곡된 견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에 갇혀있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우리가 보였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저 실천하십시오. 넘어지면서 실패하면서 다시 원했던 곳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능숙해지고 가까워지고 깊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나서 여기까지 살아온 삶이 그러하듯이요.
마음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삶은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저 바른 견해만으로 충분합니다. 반복해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실수는 괜찮습니다. '내'가 고정된 실체라고 믿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변화의 흐름 속에 두십시오. 지금 모습은 또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저 원한다면 조건을 성숙시키십시오.
그런 용기있는 걸음에 부디 이 뉴스레터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따뜻하고 다정한 봄날 보내십시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이십시오.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언와인드요가클럽 발행인 김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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